이창재 원장의 프로이드 칼럼

                               2004 ~ 2023년 사이 글 

이창재 원장의

정신분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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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내면 배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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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느 작가 소개로 80대 나이의 유명 화가와 시인을 만나 짙은 인생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어둠과 빛이 어우러진 수묵화로 자연과 더불어 그의 정신 깊이 각인된 인생 자극들을 오묘한 형상과 질감으로 표현해낸 화가 B는 남한에 정부가 수립된 후 공산당을 배척하던 초기 시절에 살던 마을이 산에 숨어 활동하던 빨지산 공비의 습격을 받았다 한다. 그때 아버지가 4살 아이를 엎고 도망가다가 뒤에서 칼을 맞아 그 아이는 한쪽 팔이 잘리고 아버지는 즉사하는 운명적 사건을 격게 된다.  어머니는 일곱번 째 막내 자식(B)을 낳은지 얼마 후 이미 사망했기에, 20년 차이 나는 형들의 보호 아래  외팔이가 된 아이가 집 밖에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놀려 대서 6세부터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 한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계속 놀려 대서 기가 눌린 아이는 도저히 학교에 갈 수 없어 중학교만 마치고 오직 그림만 그리고 지내다 20대 초반에 국전에 입상해 간신히 미술계에 발을 들이게 됬지만 학력사회의 텃세에 눌려 중년이 될 때까지 고생을 하다, 노년부터 주목 받는 화가가 된 인생사.


사람들과 어울리며 잘 지내고 싶어도, 어릴 때부터 신체 조건이 또래와 달라 생긴 고립감과 외로움을 오직 전국의 '자연'을 돌아다니며 그것을 수묵화로 그려내는 데 위안을 얻었다 한다.  환갑이 되어서야 세상의 주목을 받아 늙어서야 놀림받고 천대받던 콤플랙스에서 벗어나게 된 인생사.  이 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형성된 운명적 유년기와 사춘기 상처와 그로 인한 콤플랙스를 어떤 에너지로 극복해낼 수 있었을까?  그의 예술적 창조에너지는 어떤 원천에서 생성된 것인가?  이것이 궁금해서 그 화가에게 살포시 물었다.

"선생님은 예술 창작 에너지를 어디로부터 받으셨나요? "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보네요.  뭐하시는 분인가요? (명함을 전해드린다. '꿈분석가'라는 명함을 보고..) 

음. 음.  '자연'에서 라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있어, 차마 정신분석적 물음을 더 던질 수가 없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정신분석가의 관심 물음을 던지는 것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속에서 든 생각은 ...'4살 때 아버지 등에서 겪은 그 운명적 사건!' - 분명 그때 그 아이는 충격으로 기절해서 '그것'과 연관된 지각들 일반이 '해리'되어 있을 것이다.  '해리'된 그것은 내면 깊은 곳(무의식)에 자리잡아 이후 인생사를 살아내는데 당사자 모르게 암암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5세부터 겪은 주변 아이들의 견디기 힘든 놀림'. 집 밖에 못나가고 집에 머물던 그 아이의 심정!  감당하기 힘든 그 충격과 감정들은 심신에 박혀서 여러 병증을 일으키거나 사회를 거부하는 부적응적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미래에 화가가 될 6세 아이 B 는 집에서 혼자 먹물과 붓으로 그림 그리는 것으로 자기 삶의 탈출구를 스스로 생성해낸다.   바로 그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4살 이전에 사망한 엄마, 4살 때 사망한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가?   주위의 놀림을 버텨내며 이 세상이 결코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할 자신만의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청년기부터 전국을 열심히 돌아다닌 그 기운과 스스로의 힘으로 무학임에도 끊임없이 국전에 응모해 여덟번이나 입상한 것에는 다분히 '아이의 목숨을 구하고자 노력하다 돌아가신 그 아버지'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그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아울러 전국의 자연을 만나고 그 자연과 마음 소통하며 그만의 창작품을 남겨낸 것은,  영유아기에 긍정 에너지를 쏟은 얼굴도 기억 않나는 엄마의 기운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 없이 고아가 된 자신을 돌봐준 형과 형수의 에너지도...그때 그가 말한다.

19살이 되지 할아버지가 부르셔서 내게 '호'(소0)를 지어 주시며, 이걸 가지고 너 자신을 잘 가꾸어 가라 말해 주시는데, 그땐 그 호가 내 맘에 들지 않았고 화가 났어요. 

- [아. '거창'하게 느껴져 부담감 주던 이름을 적절히 중화시키는 그 '호'를 지어줘 손자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타인들이 B를 편하게 느끼게 해주는.. 깊은 지혜 지닌 할아버지의 기운이 B에게 들어와 있구나. ]

- 그리고 그의 그림에 빛과 어둠의 비율이 꽤 조화롭고 긍정 무드로 발현되고 있는 걸 보아, 화가인 아내와 접촉하며 취한 (유년기 모성 콤플렉스가 적절히 중화된) 에너지도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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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회적 관계에서 더 묻고 싶어도 묻기 힘든, 온전한 대답을 듣기 힘든... 물음들이 내 내면에서 꿈틀거리다... 마음을 접고 조용히 자리를 뜬다.  

"너무 놀랬을 그 아이야 이젠 괜찮니? 놀림 받아 상심한 소년야. 학력 없어 외면 받던 청년아. 이젠 괜찮니? 

이 세상에서 꼭 이루고 싶었던 것. 이젠 이루셨어요?   

한평생 끊임없이 '자연'을 접하며 (기억조차 나지 않는 유아 시절 '그 분'과) '어떤 대화'를 나누셨나요? " 


일제 식민 시대에 태어났거나 1950년 육이오 전쟁 이전에 태어난 세대가 겪은 생존(삶/죽음)과 직결된 상처들은, 물질적 선진국이 되고 민주주의-개인주의 문화의 혜택을 꽤 누리며 사는 오늘날의 대다수 한국인이 겪는 상처와 질감이 매우 다르다.  이러저런 힘듬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에게 듣는 개인적 질감의 마음 상처와 질이 꽤 다른 '그것'은, 오직 그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만 비로소 공감할 수 있는 시대사적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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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