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후기를 공부하고 나서 치료 받은 일

조양구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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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구 자기 분석

나는 신학을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을 하지 못해서, 인간 이해에 대하여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했지만 깊이 있는 공부는 할 수 없었습니다.

신학적 인간학에 대하여 공부한 것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기존의 이미 습득된 가치관과 지식을 가지고 공부했지만 기억력도 많이 상실되어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 같아도 곧 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이 대단히 풍성해지고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삶을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신학적으로 내 자신의 관심이 지나치게 위로 치우쳐 있었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경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외부의 다양한 환경,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인간이 지금 하는 이상적인 병리적인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학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인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거의 필수적입니다.

종종 신학만을 하는 사람들의 약점은 인간에 대하여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습니다.

 

인간의 실존을 할수록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이 복음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의 간절한 욕망과 목마름과 기대와 필요를 아는 것은 필수적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이제 목회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나를 돌아보면서, 아하 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그 원인을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개인적으로 풀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 그리고 무지를 발견했습니다. 많은 도움을 얻었고, 나 자신에 대하여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교리에서만 천편일률적으로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어디에서 힘을 얻고 혹은 얻지 못하는 결핍 등으로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아픔과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어진 답만을 주려고 하다보니 그 사람에게 주일마다 외쳐지는 그 거룩한 말씀이 힘이 없이 되돌아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주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초기 6년의 오디프스가에 소화되지 않은 경험된 사건이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기억 속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자리를 잡고 조직화되어 그 인생에 더 이상 좋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초기의 결핍과 좌절된 욕망을 채우려고 인생의 모든 기회를 놓여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더 깊이 있게 인간의 고통의 원인을 알고 치료하고 회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시절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적절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서, 병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복음으로 치료하지만 그 복음이 필요한 인간의 내면의 도움을 요청하는 절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환자의 내면을 알지 못해서 그저 항생제를 처분해 온 것 같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 외부의 다양한 상황, 그리고 본능 등으로 그리고 자아의 강함과 약함이 이런 문제들을 일어난다는 것을 구조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존재가 어느 수준에 넘어가면, 그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할 때, 그 아이를 놓아서 그 아이에게 아버지가 들어와서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아이에게 이루어지게 해야 된다는 부분은 나에게 충격이었습니다.

 

현실의 목회 현장에서 목사는 교인을 교회의 멤버로 만들기 위하여 목사의 말에 집중하게 해서 결국은 그 사람이 더 넓은 하나님에게 나가는 길을 막아 버리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프로이드를 공부하면서,

프로이드 시대에 기독교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람을 살기보다는 경직된 교리에 인간을 억지로 죄책감을 불어넣어서 오히려 역기능에 걸려서 인간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프로이드는 하나님의 위치에 아버지를 놓아서 인간의 고난의 원인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 오히려 기독교에 대하여 오해를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맑시즘이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의 자리에 역사의 주인을 인간으로 대치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당시의 기독교는 인간의 고난의 문제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타락한 기독교는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잘못된 죄책감을 불러 일어켜서 교회의 제도 아래 두려고 해서 더욱 병든 인간을 만들어 버렸기에 맑시즘이 등장하여 인간이 역사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공부하면서, 내 자신이 나의 나됨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고, 내가 만난 부모, 그리고 외부의 세력, 그리고 우리 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의 정신들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아주 충격이었습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저는 가정에서 생각해보면 어린 초기 6년이 건강하게 성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사춘기를 그래도 버티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알게 되는 참 감사할 일입니다.

 

아버지가 자유당 시절에 경찰서장이었으니 말입니다.

그후에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사업의 실패와 아들에 대한 기대로 가정에서 지니친 공부에 대한 강요는 나의 젊은 시절을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을 버틴 것이 초기의 6년간의 삶이 지탱했다고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다른 깨달음은 나와 다른 내 주변의 사람들의 형성 과정을 단순하게 보지 않고, 그래도 이번에 프로이드 혹은 다양한 사람들의 눈으로 인간을 볼 수 있게 되고 그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늦은 나이에게 접해서 인지 그래도 이창재 교수의 탁월한 강의와 건강한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나가는 말 : 대단히 유익했던 점은 공부하면서, 내내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괴롭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추상적인 어떤 것에 구체적으로 보게 되고 그것을 직면하게 되어 많은 부분에서 유익했습니다. 특별히 잘못된 죄책감으로 인하여 나의 삶에 즐겨야 할 좋은 점들을 망각하고 살아온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기독교가 때로는 은혜를 강조하기 위하여 일부러 죄악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점은 반성을 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의 축복을 누릴 때, 그것을 방해하고 살지 못하게 했던 것이 생각나서 부끄럽지만 쉽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